지난 2년을 함께 한 티몬과 나

내가 아직까지 티몬에서 일하는 이유

2010년 여름, 티몬 입사를 위해 대학원 휴학을 결정하는 건 쉽지 않았다. 그 당시 난 순전히 내 느낌을 믿었던 것인데, 이 회사가 비도 새고, 화장실도 남여 공용 한 칸일 정도로 근무 환경이 열악한 데다가 내 동기들 대비 1/2밖에 안되는 월급을 받을 지언정 그래도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다.

▲ 청담동 사무실 시절. 임시 테이블에서 개인 노트북으로 근무를 했다.

“왠지 내가 지금 여기에 있어야 만 할 것 같은” 확신. “대학원 보다 훨씬 더 큰 걸 주고,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확신”이 나를 티몬으로 끌어당겼다. Dan이 말했던 것 처럼 “다른 회사에서 당신이 한 시간 더 일한다고 큰 게 변하지 않을 수 있다. 하지만 티몬은 다르다. 아직까지는 당신이 한 시간 더 일하면, 많은 게 바뀔 수 있는 회사다” 라는 게 내 맘 속 깊은 곳에 있는 그 어떤 꿈틀대는 걸 자극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.

내가 티몬에 조인했던 2010년 8월에는 3, 40여명에 불과할 정도로 작고 유연한 회사였다. 그 당시엔 일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회사에 나가는 것 자체가 무척 즐거웠다. 위계 서열이 없는 수평적인 회사이기도 했거니와 정말 내가 조금 더 일하면 많은 게 변할 수 있었던 ‘작은 회사’ 특유의 가능성이 날 흥분시켰고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다 바쳐서 이 녀석을 잘 되게 해 볼테야 라는 생각으로 출근을 했으니까.

뭐, 다른 사람이 더 잘 알겠지만, 그 작은 회사는 정말 눈깜짝 할 새 거대한 괴물이 되었다. 직원이 40명에서 100명으로 늘어나는 건 순식간이었고, 티모니언은 십단위가 아니라 백단위로 불어났다. 우리 회사에 관심있는 친구들을 만날 때 마다 나는 회사 직원수를 매 번 업데이트 해야 할 정도였으니.

직원수가 늘어날 수록 내가 하는 일이 좀 더 세분화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. 처음엔 수진씨랑 마케팅, 이벤트, 홍보, 광고, 제안서 업데이트 등 닥치지 않고 ‘마케팅’ 으로 분류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직원 수가 900명으로 늘어난 지금은 ‘브랜드 마케팅’ 이라고 한정시켜 말할 수 있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 되었다.

회사가 커질 수록 내가 견뎌야 하는 것들이 또 있었는데, 그건 상대적인 박탈감이었다. 같은 시기에 들어온 친구들 중 영업으로 지원한 친구들은 조직이 커지는 만큼 승진이 빨랐고, 보상도 늘어났다. 난 마케팅 만년 쫄따구로,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항상 내 위로만 꼳혔고, 난 늘 경험 없는 설움을 겪어야만 했다.

그런데 왜 아직까지 티몬에서 일하냐구?

하지만 아직까지, 내가 여기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까. 직장 생활 2년차에 접어들면서 내 ‘직업관’ 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봤다. 날 괴롭혔던 상대적 박탈감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요!! 라고 외칠 수 있는 건 아니지만, 영업과 마케팅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거니와, 내가 처음 이 회사에 조인한 이유가 ‘돈’이나 ‘승진’ 을 바라고 들어온 게 아니라 ‘재미’ 와 ‘보람’ 그리고 개인적인 ‘성장’ 을 위해 들어온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떠올렸다. 세상 살이가 복잡 다양해 질 수록 중요하지 않은,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가치들이 나를 흔들었던 것 같았다.

아직까지 일을 하는 건 재미있고 보람있다. 작은 회사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다양한 역할 중, 내가 끝까지 책임지고 가져갈 역할로 ‘브랜드 마케팅’ 을 선택했고 회사는 다양한 형태로 나에게 기회를 제공했다. 나이 스물 여덟에, 몇 십억 대 규모의 브랜드 캠페인을 세 번이나 직접 해봤다. 경험 없이 열정만 가지고 무작정 뛰어든 첫 캠페인은 내가 말아먹었기 때문에 욕도 엄청나게 들었었고 두 번째 캠페인을 통해 ‘마케팅 전략’ 과 ‘대행사 컨트롤’ 이라는 부분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고 세 번째 캠페인을 집행하면서 ‘브랜드 마케팅’ 이라는 전반에 대해서 폭 넓게 공부하고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.

아마 내가 마케팅 측면에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P&G나, 현대카드에 들어갔다면 절대 못했을 공부를 티몬에서 1년 반 동안 온몸으로 받아내며 할 수 있었다. (유명 회사에 갔다면 난 아직 막내 나부랭이로 나의 작은 역할에 목숨을 걸며 살아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.) 그리고 브랜드 마케팅은 감히 발을 담글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고, 보람찬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그걸 만들어 나가는 일이 참 멋진 일이라는 자부심도 생겼다.

이젠 내가 ‘티몬에서 일해’ 라고 말하는 데에서 오는 기쁨보다 ‘티몬 브랜드? 내가 만들었어’ 라고 말하는 데 떳떳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.

티몬 초기에 “왠지 내가 여기 있어야 할 것 같은 확신”은 아직까지 변하지는 않았다. 예전엔 회사의 다듬어지지 않은 치명적 매력 때문이었다면, 이젠 내가 여기서 ‘직접 해 보며’ 쌓은 경험이 나중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,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할 때 중요한 밑거름이 되어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.

내가 정한 기준 처럼, 20대는 30대에 내 진가를 발휘해야 하기 위해 날을 세우는 연습을 할 때니까. 적어도 아직까지는 물리적으로 책임 질 것이 없으니, 30이 되기 전 까지는 직관적으로 내가 옳다고 하는 그 느낌을 따라가보련다.